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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일 토요일

아스트로가 → 엘 아세보(37.95Km)

9월 11일 시작했던 순례길은 어느덧 10월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드디어 10월의 첫날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길을 나선다.

한 시간도 채 걷지 못한 시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에 외국인 할아버지 순례자께서 어디서 다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콧등에 상처가 나서는 제법 많은 피를 흘리고 계신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리고 그 옆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어쩔 줄 몰라 하신다. 난 배낭에서 내가 가진 일회용 알콜솜과 밴드, 그리고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꺼내 할머니께 건넸다. 때 마침 BAR 사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구급상자를 들고 나오신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가지고 있던 밴드 몇 장을 할머니께 더 드리고 다시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도 가볍게 아침을 먹는다.
혼자서 걷는 순례길.

오늘은 흙길이 많다. 그래서인지 걷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게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산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의 걸음은 정말 너무도 가볍다. 아주 멀리 앞서가던 순례자들을 따라잡아 앞서 걷기도 했다. 나의 걸음 속도에 외국인 순례자들은 “부엔까미노” 라는 인사와 함께 걸음이 빠르다며 엄지척을 해준다.

힘들었던 산길~
산속에서 맘껏 뛰놀며 풀을 뜯는 스페인 소떼들~

기독교 순례길인 산티아고에서는 십자가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큰 의미 없이 십자가를 마주한다. 때로는 십자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어떨 때에는 그냥 지나치곤 한다. 오늘은 철의 십자가를 지나가는 날이다. 아마 기독교 신자들은 이곳을 지나면서 자신만의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죄를 이곳에 두고 간다는 의미로 돌멩이를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이러한 사전 지식 없이 순례길에 오른 터라 이곳이 그런 의미 있는 장소인 줄도 모르고 그냥 가볍게 사진 2장 찍고 지나쳤다. 다시 순례길에 오른다면 그때는 이곳을 그렇게 쉽게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철의 십자가. 이곳에 가져온 돌멩이를 던지며 자신의 모든 죄를 놓고 간다고 한다.

가벼운 발걸음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리고 많이 걷게 된 이유가 하나 생겼다. 순례길 초반 함께 걸었던 왕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며칠 후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산티아고에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단다. 그래서 그 전에 내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얼굴보고 싶다고 하신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걸었다. 물론 오늘은 흙길이라서 발이 가벼웠던 게 큰 힘이었다.

엘 오세보.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석양.

산속에 있는 엘 오세보라는 작은 마을에서 오늘을 마무리한다. 이곳은 영화 나의산티아고에서 주인공 하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난 후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곳이다. 최근에 신축한 시설이 아주 좋은 알베르게이다. 맛난 음식을 먹은 후 테라스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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